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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vol.69
초고령사회의 리빙랩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최이규(계명대학교 교수) 작성일 : 2025-12-17

본문


초고령사회의 리빙랩


최이규 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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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지공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출처 : 직접촬영



  올해는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역사적인 해다.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사회, 대한민국은 20년 내 초고령사회 중에서도 가장 속도가 빠른 세계 최대 노인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지 한국뿐만 아니라,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현상이며, 고령사회의 모든 첨예한 문제들이 다름 아닌 우리 주변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날 것임을 예고한다. 지금까지 서구와 일본의 모델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도시재생과 커뮤니티 정책이 기초부터 새롭게 혁신되어야 하고, 그 성과와 한계, 성공과 실패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실험실에서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동안 커뮤니티의 지속성을 고민해 온 학계와 실무자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준다.  

  고령사회에서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리빙랩 사업은 노년층 주민이 실제 생활공간에서 직접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실험적 사회 혁신 모델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평균수명 증가와 저출산 심화로 고령층 비중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지역 사회는 의료·돌봄 서비스 수요 증가, 만성 질환 관리,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 지역 공동체 약화 등 다층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중앙정부 중심의 제도 개선이나 행정 서비스로만 해결하기 어렵고, 지역 특성과 주민의 요구를 반영한 생활 기반 참여형 접근이 필수적이다.


  노인은 더 이상 사회적 보호의 대상만이 아니다. 고령사회의 리빙랩은 노년층을 커뮤니티 혁신의 공동 주체로 세우고, 고령자의 경륜과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커뮤니티 정책은 소위 ‘노인친화적’ 공간을 조성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왔다.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뤄낸 것은 사실이나, 그들 인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하기보다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그쳤다. 노인의 고립 문제는 데이케어 같은 일종의 경로당 정책으로는 온전히 해결될 수 없다. 지금의 노인은 뒷방 늙은이 이미지의 예전 노인과 다르다. 70대, 80대, 심지어 일부 90대 노인 또한 중년 못지않게 건강하며, 활동적인 삶을 원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노인정책은 노인들에게 시민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그저 환자 취급하기 일쑤다.

  노년층을 단지 약자의 한 부류로 가두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서 “경로”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대신 “노약자”라는 호칭이 통용된다. 노인이 우대와 배움의 대상이던 과거에서 지금은 그저 사회적 약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들이 커뮤니티 재건 과정에서 활동하려면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은 가장 우선적이며 필수적인 과정이다. 다시 말하지만, 노인은 약자가 아니라 우대의 대상이다. 즉 사회적 자원에 대한 소비만 하는 계층, 고갈시키는 계층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가치를 생산하고, 커뮤니티를 복원하고, 문화와 생명을 생산할 수 있는 존재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실상 노인의 지혜보다 더 소중한 것은 노인의 시간이다. 65세라는 노인의 정의는 연령에 기준을 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나 통념상, 퇴직/은퇴해야만 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이 나이는 아직 너무 젊고 아까운 시간이다. 우리 사회가 천만 명이라는 노인 자원을 그저 돌봄의 대상으로 대한다면 그 비용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지만, 그들을 공동성이 와해된 대한민국 커뮤니티 복원의 주요 일꾼으로 쓴다면 상당한 국가 재정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생계활동에 남는 시간이 없는 청장년층에게는 현실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노인들은 적극적으로 커뮤니티의 생산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고령사회를 배경으로 한 리빙랩 사업의 구체적 목표는 첫째, 고령층의 사회적 관계망 복원 및 참여 확대가 되어야 한다. 은퇴 이후 지역 공동체로부터 분리되기 쉬운 노년층이 지역 의사결정, 서비스 설계, 실행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사회적 역할과 자존감을 회복할 기회를 주어야 하며, 직접 경험할 수 있게 정책과 디자인으로 보조해야 한다. 둘째, 지역 자원의 통합적 활용과 세대 연대 구축이다. 예를 들어 노년층의 돌봄 경험과 지역 역사 지식, 청년층의 신체적, 디지털 역량, 지자체의 행정 자원, 연구 기관의 기술·데이터 분석 능력을 결합해 다층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고령화 대응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셋째, 생활 기반 서비스 혁신 모델 실증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AI기술을 활용하여 고령자 맞춤형 스마트 헬스케어, 이동 약자를 위한 모빌리티 지원 시스템, 마을 돌봄 플랫폼, 고립 예방 커뮤니티 앱 등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첨단, 가상, 비실체적 기술이나 정책보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노인의 몸과 활동과 연결된 실제 생활환경에서 실험이다. 지역 차원의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공간, 서비스 구조로 정착시켜야 한다. 연구실 중심 개발에서 벗어나 사용자-현장 검증 중심 혁신이라는 리빙랩의 본래 취지에 맞게 공간을 변화시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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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주민주도 도시재생 리빙랩 참여팀-달성토성마을 

출처 : 달성토성마을팀 제공



  소비에 그치는 공간이 아니라, 생산하는 공간. 달성토성마을 리빙랩은 그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의 노인들은 마을 온실, 텃밭, 마을정원, 골목정원 등을 통해 각자의 시간을 새로운 생산에 투여하고 있다. 이분들 중 아무도 스스로 노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길 원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매우 활기차고 젊게 살고 있으며, 사회적 기여를 통해 자부심과 삶의 의미를 체험한다. 

  올해 진행되었던 달성토성마을 리빙랩의 의의도 이와 연동된다. 첫째, 고령층이 사회적 소비자 혹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경험 기반 생산자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이는 초고령사회에서 중요한 사회통합 가치이며 세대 간 균형 있는 인구 구조 변화 관리에도 기여한다. 둘째, 지역 커뮤니티의 공동 해결 역량(co-production capacity)을 강화한다. 문제 해결 과정 자체가 주민 간 신뢰와 협력 문화를 형성하는 사회적 자본 축적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 리빙랩은 단순 기술 실증 사업이 아니라 지역 거버넌스 혁신 모델이라는 점에서 행정, 시민, 민간, 연구 영역의 다중 협력 체계를 지속적으로 작동시키는 플랫폼적 성격을 가진다.


  현재 국내 리빙랩 사업은 몇 가지 한계를 가진다. 첫째, 참여자 구성의 다양성이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고령층의 실제 의견 반영이 제한된다. 고령자 특성상 디지털 접근성, 이동 제한, 의사표현 방식 차이가 존재함에도 이를 고려한 참여 설계가 부족하다. 둘째, 단기 성과 중심 평가 구조는 리빙랩의 지속성을 약화시킨다. 주민 관계망 강화, 돌봄 부담 경감, 공동체 회복 등 장기적 사회 가치가 정량화 지표보다 중요함에도, 사업화 성과나 기술 적용 여부만을 평가 지표로 삼는 경향이 있다. 셋째, 리빙랩이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되면서 예산 종료와 함께 공동체 거버넌스도 함께 해체되는 경우가 많아 지역 내 지속 기반이 약하다.


  개선 방향으로는 첫째, 노년층 맞춤형 참여 디자인이 필요하다. 참여 설계 단계에서부터 디지털 격차 해소 교육, 접근성 친화 공간 및 시간 조정, 의견 도출을 위한 퍼실리테이션 기법 도입 등을 통해 실질적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 구축이 요구된다. 지자체 예산 의존을 넘어 사회적 협동조합, 지역 기업, 대학, 커뮤니티 케어 기관, 의료기관과의 다중재원 모델을 마련하여 상시 플랫폼화해야 한다. 셋째, 평가 체계를 양적 성과 중심에서 사회적 가치 지표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독사 위험 감소율, 지역 간 돌봄 연계 활성 비율, 세대 간 교류 빈도, 삶의 만족도 변화 등 질적 변화 지표가 평가 체계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 넷째, 리빙랩 결과물의 정책 전환 메커니즘 제도화가 요구된다. 주민 실험이 일회성 사례로 그치지 않고 공원녹지, 지역 복지, 커뮤니티 돌봄, 도시계획, 교통 정책 등과 연계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리빙랩은 지역 커뮤니티의 회복과 주민 주도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혁신 기반이며, 단순 참여형 프로젝트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주민 스스로 해법을 생산하는 사회적 실험 플랫폼이다. 고령층이 지역 문제의 수혜자가 아닌 창조적 해결 주체로 자리매김할 때, 리빙랩은 고령화 시대가 요구하는 지속 가능한 지역공동체 모델을 실현하는 핵심 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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