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소재하고 있는 도시재생 거점 시설을 살펴보다 보니 달성토성마을 온실이 눈에 띄었다. 달성토성마을은 워낙 잘 알려진 도시재생지라서 인터넷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이었고, 도시재생 기본 교육 과정의 견학지에도 달성토성마을이 있었다. 대구 중심에 토성이 있었다니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다 보니 여태 찾아가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그 토성마을에 온실이 있다니 식물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부쩍 관심이 생겼다. 온실이라면 수목원이나 식물원 같은 곳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이국적인 식물들이 언뜻 떠오르는데 그 온실이 도시재생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사실 달성토성마을이 기자에게 초면은 아니다. 예전에 잠깐 인연이 닿아 서구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무관님께서 달성토성마을 문화 해설사 양성 과정에 참여해 보라고 권하셨다. 그해가 2016년, 달성토성마을은 여기저기 단장 중이었으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비산2·3동 주민 자치위원회가 주관하고 대구경북강사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달성토성마을 문화 해설사 양성 과정이 마련되었다. 그 당시에는 그저 해설사 교육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 상화로 주민협의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그때의 교육이 도시재생과의 첫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은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주로 저녁 시간에 날뫼공방에서 이루어졌다. 보통의 해설사 교육은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는 틀이 정해진 스토리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었지만, 달성토성마을 문화 해설사 교육은 달랐다. 사업이 이루어지는 초창기인지라 다수의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회원들의 얘기를 듣고, 마을을 대표할 이야기로 무엇이 있을까 자료를 수집하고, 선별하고 그것을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하는 과정이 먼저 있었다.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고, 토성 아래 둘레길이 원래는 우마차가 다닐 만큼 좁은 길이었고, 섬유 산업으로 대표되는 서구인지라 섬유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어느 곳은 비만 오면 마을길이 진흙투성이로 변하는 바람에 “마누라 없인 살아도 고무장화 없이는 못 산다.”라는 농담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때 강사님에게 배웠던 스토리텔링을 위한 자료 수집 과정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는 지금도 해설을 위한 자료 수집을 할 때 종종 그때 배운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상화로 주민협의체에서 마을 조사를 할 때도 비슷한 자료 수집 과정을 본 적이 있었다.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자체적으로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자율성’에 기반한 것이 도시재생의 본래 취지라면, 그때의 교육은 참 ‘도시재생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 후반부는 마을을 직접 둘러보며 해설 시연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료를 하던 날, 정든 회원들 가운데 몇 분은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어묵탕, 떡볶이 등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준비해오셨다. 구청 공무원들도 참석하신 자리에서 수료증과 함께 부상으로 미역을 한 봉지씩 받았는데 굉장히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동장님께서는 “네 동네, 내 동네 가리지 말고 열심히 일해 주십시오.”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그때의 감회가 새롭다. 교육 중 마을을 돌 때 집집마다 집 앞에 놓여 있던 화분 가운데서 어느 집 담벼락 아래 유리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공간에 놓여있던 다육이들이 생각났다. 이갑년 반장님…… 혹시나 해서 온실 관리하시는 분에게 전화해 보니 역시나 반장님이시다. 지금은 해설사로 활동하시면서 온실 관리를 맡고 계신단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그때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면서 그새 한 번도 다녀가지 않았음을 서운해하셨다. 같이 교육을 받았던 해설사들의 안부를 물으며 이갑년 해설사님을 인터뷰하는 동안 달성토성마을 온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전에 동네의 좁은 골목에 쓰레기가 쌓이고 공터는 거대한 쓰레기장 같았던 시절, 사람들은 화초를 기르고 싶어도 마당이 좁아서 제대로 키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분을 바깥에 내놓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마침내 아름다운 골목 정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겨울이 문제였다. 집안엔 들일 곳이 없고 대문 밖에 두니 화초가 다 얼어버렸다. 봄이 되어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센터에서 새로운 화초를 나누어 주어도 겨울이 닥치면 화초가 모두 얼어 죽어버렸다. 2년 동안 봄마다 새로운 화초를 구입하려고 하니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골목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 아예 온실을 하나 지어서, 겨울 동안 동네 화분을 몽땅 모아서 그곳에 보관하면 어떨까 하는 발상이 나왔다. 그것이 오늘날 달성토성마을 온실이 지어지게 된 계기라고 한다. 온실에 화분을 모아두니 식물원처럼 볼거리가 생겨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고, 해설사 투어 코스에도 포함이 되고 정원 관리사 양성 교육 과정도 생겨나게 되었다 한다. 또한 봄, 여름, 가을 동안 온실이 텅 비게 되자 그곳에 다육이들과 정원관리사 교육생들의 작품도 전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단순히 겨우내 화분을 보관하는 용도 외에도 커피나무나 바나나 같은 다양한 열대 식물도 심어서 식물원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랑한다고 한다. 다만 온실 관리가 순수한 자원봉사인데다 자율적이다 보니 온실을 제대로 관리할 인력이 모자라는 것이 어려움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예전에는 겨울 추위 때문에 골목 정원에 일년초 화초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겨우내 화분을 보관할 수 있는 온실이 생기니 예전에는 시도해 볼 수 없었던 크고 비싼 수종의 나무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지금의 토성마을 골목 정원은 큰 나무 화분도 많고 한층 풍성해지게 되었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하나로 뭉친 공동체의 힘이 아닐까? 또한 식물과 관련한 다양한 교육을 위해 공방을 짓는데, 네 곳에 나누어 짓기보다 자원을 집중하여 한곳에 짓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의견에 따라 마련된 건물이 달성토성마을 다락방이라 한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다. 귤이 회수를 지나면 탱자가 되는 법이다. 토성마을 온실을 벤치마킹해 갔던 다른 마을은 웬일인지 대부분 실패했다고 한다. 어쩌면 달성토성마을이 그랬던 것처럼 ‘문제 발생 – 해결 - 다른 문제 발생 - 다른 해결점 모색’이라는 일련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착된 제도가 아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 마을의 온실은 적당히 옮겨다 심은 나무처럼 그곳에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7년 전 마을 해설사 교육을 받을 때 담벼락 아래에서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던 다육이들이 떠오른다. 이곳 달성토성마을 공동체에서 작은 나무들이 아름드리나무로 크게 성장한 것을 또한 볼 수 있었기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낀 취재였다.

<달성토성마을 다락방 전경>, 출처:박선미 기자
[참고문헌]
* 달성토성마을 해설사 이갑년 선생님.
* 「달성토성마을, 골목정원을 누가 아시나요?」,